《syzygy》 : 공은택 개인전글. 권혜림(큐레이터)
불명확성이 곧 증명되지 않음을 연상시켜 버리고 마는 지금 여기이다. 선명한 증명을 위해 명확함을 선택하는 일은 어느 정도의 보편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감각하는 이 세계는 우리를 결코 수긍할 만한 보편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보편의 이념은 자꾸만 권력의 언어가 되어가고, 보편 그 자체의 타당함은 없이 개별을 짓누르고 그 위에 서 있으라 재촉한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자들은 이 세계를 부유하며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기로 결심하고 분산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을 모른다. 불명확하기에 무엇도 잘 흡수할 수 있고 투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를 지워버리는 듯하면서도받아들임으로써 분명함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전시에 입장하기에 앞서, 작가 공은택과 필자는 2가지를 감상자에게 제시한다. 첫째, 우리는 본 전시장에 놓여 있는 작품을 ‘의미장(Sinnfeld)’으로 비유해 본다. 의미장이란 독일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개념으로 전체라 여겨지는 세계에서 존재를 부여받지 못한 대상을새로운 장(feld)에서 논의하려는 태도이다.1) 즉 거대 세계관을 해체하고 개별 의미를 토대로한 다양한 장에 기초한다. 각 장은 연관과 얽힘을 통해 다시 새로운 의미를 창발한다. 이로써 무수히 많아진 의미장은 어떠한 대상도, 얼마든지 존재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둘째,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제껏 전체적이고 우주라 일컫는 세계 내에서 존재획득이 보편적인 증명이었다면, 만약 이러한 세계는 애초에 없었고 우리가 의미장에서 거주했다면, ‘보편성’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어디로 갈지 모를 지금 여기에서 적어도 방향을찾을 수 있을까? 전시에 설치된 공은택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모색을 위한 빛의 좌표이자부유하는 존재들을 위한 장이다. 동시에 장 마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미(sinn)’을 만들어 내려는 작가의 작업 짓기를 선보인다. 그리고 필자는 작가의 노력이 담긴 방법을 되짚어 당신을 전시로 안내하고자 한다.
1) 본 서문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철학 개념을 참고한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김희상 번역, 열린책들, 2017
전시 제목인 《Syzygy》은 작가가 달과 해 그리고 지구가 일직선으로 위치하는 순간을 뜻하는 천문학 용어에서 영감을 받아 지었다. 특히 ‘시지지(Syzygy)’는 기존 달의 모습이 아닌자신의 또 다른 일면이자 본질적 면모일 수 있는 월식과 일식의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작가가 주목한 이러한 현상의 함의를 눈여겨보아야 한다. 합충 또는 연접으로 대상은 새로운 존재 방식의 여지를 열어낸다는 점이다. 즉 달에게 발견된 ‘빛과 어둠’의 상대적 면모와 같이 작가는 그동안 대상의 ‘명료한 존재적 인식을 위해 상대적으로 가려질 수밖에 없었던 일면들’에 다시 주목하고 그렇게 ‘규정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들’에 질문한다. 작가는 궤도의 흐름이 미묘하게 맞닿을 때 행성과 행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력을 강하게 주고받음으로써 울려 퍼지는 공명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것을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고, 일직선에 도달하려는 행성의 애씀으로 변화하는 행성간의 위계적 관계를 조망하며 존재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이번 전시에는 <유기적 궤도, 고정된 좌표>, <인공 태양 아래에서>, <빛의 이동 경로> 그리고 <새겨지는 자국> 총 4개의 작품으로 구성되는데, 그 실험을 위해 작가는 ‘빛의 현상’을 작품들의 주요 매체로 다룬다. 작가는 밝음과 어둠을 포괄하는 달빛의 관찰을 시작으로 개인적인 경험과 연관시켜 자신에게 빛의 현상이란 무엇인가를 견고히 한다. 이토록 강하게 자신을 비추고, 반면 이토록 강렬하게 자신이 무언가에 흡수되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하며, 20대 초반 연극 무대 위에서 자신을 비추던 빛의 체험을 회상한다. 그 뒤로 작가에게 빛의 현상은 서로를 접하게 하는 동시에 대상의 위치를 암시하는 경계를 지워내는, 앞서 언급한 연접의 관계를 가능케 하는 이중적 현상으로 은유한다.
“빛은 나를 비추고, 나는 빛을 따라갔다.” - 작가노트
전시장에는 인공의 달이 등장한다. <새겨지는 자국> 작품에는 무중력의 깊은 어둠을 배경으로 인공의 달이 자신만의 속도로 끝없이 향해가고 있다. 목적지에 관한 소리는 없다. 연이어 작가와의 만남에서 “가장 본인다운 작품은 무엇인가요?”를 물었을 때 작가가 가리켰던 <인공 태양 아래에서> 작품이 있다. 정확히는 영상으로 구현된 인공 태양의 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빛을 난반사하는 원 모양의 거울 필름을 지목했다. 공은택 작가는 말한다. “이들은 스스로 빛을 내지 않는다. 달은 태양으로부터 빛을 빌린다. 이는 나름의 존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우리는 알게 된다. 작가 자신이 투영된 그 거울 필름과 인공 달의 공통점은 ‘누군가로 인해 존재를 부여받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수동적이고 종속된 대상으로 인식 되어왔지만, 작가는 이를 전복하고자 한다는 것을.
필자는 작가의 설치 방식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작가의 시선을 유추한다. 작품 속 인공 달도 원형의 거울 필름 조형물도 마치 붕 떠 있거나 그 느린 속도로 인해 움직이지 않는다고 감상자는 느낄 수 있다. 만약 히토 슈타이얼의 제안처럼 이 상태가 낙하하는 중이라면 어떨까? 더 나아가 낙하의 끝에 디딤게 될 바닥(ground)이 없는 채 낙하 중이라면, 지면으로 이끄는 중력은 미미하고 그렇기에 무게도 없으며 대상은 그저 무한히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2) 히토 슈타이얼은 이를 토대 없는 현실로 상정하고 우리 사회와 연관한다. 그리고 역설한다. “부유 상태는 모든 것의 중심을 와해시키기에 사회에 고착되고 지배적인 관습과 보편적 인식을 흩트린다. 이때야말로 새로운 시각을 발생시킬 기회”라고 말한다.3) 공은택 작가가 연출한 가상 공간 속 인공의 달 표면을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보길 바란다. 우리가 침묵한다고 느꼈던 이 달은 중심이 와해한 가상의 세계에서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읊조릴 때를 맞이하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2)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김실비(옮긴이), 김지훈(감수) 워크룸프레스, 2018, -15.p
3) 위와 동일, -16.p
“빛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초월할 수 있을까? 단단한 벽을 넘어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며, 고정된 구조 안에서 경계를 넘는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 작가 노트
계속해서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미’를 발견해 내고자 노력한다. 불명확한 것들을 방황하게 했던 거대 세계는 현실과 가상, 자연과 인공처럼 구분된 전제로 대상을 규명하는 인식적 경향과 이에 따라 그 해당을 위한 보편성의 희구를 비롯한다. 그러나 밝음과 어둠의 동요로 빛의 속성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듯, 불명확한 것들의 존재적 의미는 이중의 동요를 필요로 한다. 다른 말로는, 어떤 명료한 체계가 흔들리는 이 동요의 상황은 경계를 와해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빛의 이동 경로> 작품은 벽으로 경계 지어진 도시 건축의 내부 모양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구분 짓기의 현실을 상징하는 벽의 경계를 와해시키기 위해 작가는 공간에 빛을 개입시키고 작품을 보는 감상자는 공간의 경계가 동요되는 사건을 포착할 수 있다. 그 주변에는 페트리 디쉬를 쌓아 만든 <유기적 궤도, 고정된 좌표> 작품이자 작은 실험 무대 모음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도 구분된 층계를 뒤흔드는 것은 바로 빛이다. 한층 더 나아가 빛은 작가가 실제로 채집하여 페트리 디쉬에 놓아둔 자연물인 돌, 흙, 잔디를 드러내며 인공과 자연을 하나의 장으로 연결한다. 작가에게 ‘빛’은 대상 자체를 논하는 매체이고 ‘비춤’은 대상을 인식하는 행위가 된다.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에 초점을 두어야 우리는 존재할지도 모른다. 말장난 같은 이명제는 세계가 없는 의미장(Sinnfeld)에서 살아가는 방법이다. 의미 간의 맥락과 연결로 우리는 보편성의 희구에서 차별과 제한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 존재할 수 없던 것들과 포옹 할수 있다. 무수하고 다양한 세계를 인정하자. 이때 세계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당신은 어떤 장을 열어내었는가? 마지막으로 곧 전시장을 떠날 당신에게 전한다. 만약 당신과 당신을 이루는 무엇들이 전시장 밖 현재를 지배하고 있을 너무나 거대하고 보편적인 세계관에 부딪혀 헤매고 부유하고 있다면, 공은택 작가가 펼쳐낸 《syzygy》에서의 시간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